[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13]한국 주니어라이트급 도전사
발행일자 : 2009-10-08 13:17:47
<글 = 황현철 前 한국권투위원회 총무부장>

'마의 체급'으로 불리던 주니어라이트급
지난 9월 12일 김지훈(일산주엽)이 남아공화국에서 홈 링의 졸라니 마랄리를 통렬한 KO로 누이고 IBO(국제복싱기구) 타이틀을 획득했다. 비록 메이저 세계기구는 아니지만 한 때 마의 체급으로 불리던 주니어라이트급에서 당당히 챔피언벨트를 거머쥔 것이다. 페더급과 라이트급 사이의 이 체급은 WBA(세계복싱협회)에서는 주니어라이트급으로, WBC(세계복싱평의회)에서는 슈퍼페더급으로 불리었으나, 1998년부터 WBA에서 주니어급 대신 슈퍼급의 명칭을 채택함으로써 한국권투위원회에서도 슈퍼페더급으로 명칭을 조정한 바 있다.
이 체급은 국내에서도 명복서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한 세계타이틀매치 중 유난히 복싱팬들의 뇌리에 남는 명승부가 많았던 체급이기도 하다. 국내의 기라성 같은 특급복서 12명이 14차례에 걸쳐 세계정상을 노크한 주니어라이트급 세계타이틀매치를 되돌아본다.
1960년대, 역사의 시발점이 된 서강일

한국 최초의 세계타이틀매치 서강일 vs 플래쉬.엘로르데 전의 당시 포스터
홍수환과 더불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 받는 서강일은 1965년 12월 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WBA 주니어라이트급 챔피언 플래쉬 엘로르데에게 도전했다. 이 경기는 한국 프로복싱 역사상 최초의 세계타이틀매치로 기록되어 있다. 서강일은 이 경기에서 시종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홈 링의 텃세에 의한 판정패로 챔피언도전에 실패한다. 이를 두고 필리핀의 매스컴들은 일제히 엉터리 판정이라고 비난했으며, 이 판정 때문에 주심이었던 알렉스 빌라캄파(필리핀)는 부인과 이혼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 LA에서 전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만도 라모스에게 첫 패를 안겨주기도 했던 서강일의 기량은 1960년대 당시를 감안할 때 실로 대단했다. 서강일의 이 패배는 1980년대까지 지속된 '마의 주니어라이트급'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가능성을 보여준 1970년대
두 번째 주자는 아마추어 스타 출신의 김현치였다. 1975년 3월 몇 차례 연기를 거듭한 후 적지인 마닐라로 날아간 김현치는 하와이 출신의 필리핀 ‘탑복서’ 벤 빌라폴로에게 도전, 선전 끝에 15회 판정패로 분루를 삼켰다. 9회에 허용한 세 차례의 다운이 짐이 되어 2-1 아쉬운 패배가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9회 이후에 김현치가 보여준 놀라운 투혼은 복싱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홍수환의 4전 5기 신화가 창조되기 1주일 전인 1977년 11월 19일 스마트한 복싱으로 인기를 얻었던 김태호가 세 번째 WBA 동급 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앙에 입성했다. 김태호는 3회 1분이 지나갈 무렵 강력한 라이트로 기교파 챔피언 사무엘 세라노를 챔피언을 다운시키고도 경기 후반 체력이 떨어지면서 10회 2분 26초에 역전 KO패를 당해 아쉬움을 남겼다. 7개월 후 훅의 대명사 오영호가 같은 장소인 로베르토클레멘테 콜로시움에서 세라노를 상대로 지명 도전했지만 무기력한 경기 끝에 9회 두 차례 다운을 당하고 허무하게 KO패했다.
1980년대, 챔피언을 위한 전초전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세계타이틀매치 최충일 vs 나바레테 경기의 5라운드
김현치, 김태호 등 아마추어 톱 복서 계보를 최충일이 이어 받았다. 인기로만 따진다면 국내 프로복싱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최충일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강력한 스트레이트를 장착했으나 약한 체력과 맷집 탓에 끝내 세계타이틀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82년 1월 필리핀의 리잘 야구장에서 거행된 WBC 슈퍼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최충일은 5회 스트레이트 연타로 챔피언 롤란도 나바레테를 다운시켜 심야에 위성중계를 시청하던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완전히 그로기에 몰린 챔피언은 어지간한 펀치 한 방에도 일어서지 못할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홈 링의 나바레테는 간신히 일어나 버텼고, 5라운드 종료를 10초 정도 남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심의 복스가 선언되자마자 종료공이 울렸다. 홈 링의 텃세에 온 국민이 흥분했지만 기회는 더 주어지지 않았다.
9회까지 압도적인 공격을 펼치던 도전자는 체력이 소진되면서 10회 첫 다운을 빼앗기고 결국 11라운드에 산화했다. 8개월 후 LA에서 주어진 재도전의 기회를 잡은 최충일은 나바레테를 KO시키고 타이틀을 가져간 라파엘 리몬에게 또다시 역전 KO패로 무너졌다. 6회까지의 스코어는 60-54로 최충일의 우세였다. 2년 후인 84년에는 동양챔피언 문태진이 알래스카에서 WBA 동급 챔피언 록키 록클리지에게 11회 TKO패로 도전에 실패한다. 마의 주니어라이트급은 20년 동안 한국 복서의 왕좌를 허용하지 않았다.
1984년 4월 유환길이 필리핀의 로드 세퀴난을 15회 판정으로 꺾고 IBF 초대챔피언에 등극했어도 복싱팬들의 뇌리에 마의 체급이라는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았다. 1985년 10월에는 최진식이 호주에서 배리 마이클에 4회 TKO패로 IBF 도전에 실패한다. 이 경기는 국내에 중계되지 않았으나 대단한 난타전으로 호주에서 뽑은 1987년 올해의 경기로 선정되었다.
1990년대, 최용수와 백종권의 정상 정복

통쾌한 역전 KO승을 연출한 최용수 vs 소토의 2차 방어전
최진식의 도전 이후 만 10년 만에 최용수가 주니어라이트급 세계타이틀에 도전했다. 게나로 에르난데스가 반납한 타이틀을 놓고 홈 링의 우고 파스와 겨루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원정한 최용수는 네 차례의 다운을 빼앗고 완벽한 KO승으로 무관이던 국내 프로복싱에 세계타이틀을 선사한다. 9회까지의 채점은 89-80, 87-83, 85-84로 적지임에도 일방적이었다. 이후 최용수는 세 번의 원정 방어를 포함한 일곱 번의 방어에 성공하며 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복싱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올란도 소토에게 두 번의 다운을 당하고도 역전 KO승을 거둔 2차 방어전, 라크바 심과 벌인 사상 최고의 난타전, 미타니 야마토를 적지에서 두 차례나 셧아웃 시킨 명승부들을 남긴 최용수는 지금도 복싱의 복귀를 꿈꾸고 있다.
밀레니엄을 두 달 앞두고는 백종권이 몽골의 라크바 심을 상대로 2-1 판정승, 최용수에서 하다케야마로 넘어갔던 타이틀을 탈환했다.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에 이은 트리플 세계챔피언은 1993년 이후 6년만의 쾌거였다. 비록 판정시비가 흠이 되기는 했어도 백종권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일전이었다.
2000년대, 6년 8개월 만에 김지훈이 찾아온 타이틀

WBA 타이틀매치 백종권 vs 카사마요르의 프로그램 표지
타이틀획득 3개월 만에 1차 방어전을 가진 백종권은 최규철을 맞아 무승부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이후 5월 미국 원정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호엘 카사마요르에게 타이틀을 넘겨줘 단명에 그쳤다. 최용수는 이후 일본의 샤이안 하세가와짐으로 스카우트되어 2003년 1월 WBC 동급 챔피언 시리몽콜 싱마나삭(태국)에게 도전하지만 아쉬운 판정패로 두 번째 재관에 실패했다.
그리고 6년 8개월 후 김지훈이 주니어라이트급의 역사를 새로 썼다. 기구의 가치를 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거둔 값진 역전 KO승은 영원히 한국 프로복싱사에 각인될 것이다. 김지훈 선수가 메이저기구를 넘어 매니 파퀴아오 같은 세계적인 복서가 되기를 기원한다.
<한국 프로복싱 주니어라이트급 도전 일지>

*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는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번주는 필자의 사정으로 지연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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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추억이 마구 떠오르는 글입니다
2009-10-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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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라이트급도전사가매주수요일에연재된다고하셨는데.이것이책입니까.아니면논문입니까한권만구할수있나요
2009-10-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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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권.... 라크바 심한테 완전 진 건데 어거지 판정 ㅉㅉㅉ
2009-10-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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