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이인 1] - 보령소년 이야기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서(湛軒書) 내집(內集) 4권 보유(補遺)편에는 유(柳) 아무개가 보령(保寧)에서 만난 기이한 소년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유 아무개란 사람은 천성이 순박하고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일찍이 어떤 일 때문에 충남 보령 땅에 가다가 날이 저물어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길을 찾아 얼마 동안 수십 리쯤 들어가게 되었는데, 푸른 절벽이 깎아지른 듯하고 골짜기는 깊숙하였으며, 산길은 풀이 우거져서 갈 곳을 모르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말에 내려서 방황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언덕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덩굴을 잡고 올라갔다. 올라가자 두어 칸의 초가집이 있는데 소나무와 대가 우거져 있고, 그 중간에 한 소년이 누런 빛깔의 가는 대를 결어 만든 초립(草笠)에다 바지와 저고리 위에 입는 푸른색의 포(袍)차림으로 서 있는데 얼굴모습이 준수하였다.

그는 문에 기대어 서서 무언가 생각하듯 허공을 응시하다가 손님이 오는 것을 보고 바삐 마루에 내려와 영접하는데 범절이 매우 공손하였다. 유 아무개는 마음으로 이상하게 여겨 말을 거니 그 말솜씨가 유창할 뿐 아니라, 풍채와 태도도 보통보다 뛰어났다. 조금 후에 저녁 식사를 내왔는데 물과 뭍의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였다. 유 아무개는 “산중에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얻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소년은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유 아무개는 그런 모습에 더욱 놀래면서도 이상하다고 여겼다.

보령소년 이야기가 수록된 저서

밤이 깊어졌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가깝게 들렸다. 소년은 “손님은 조금 기다려 주시오. 내가 어떤 사람과 약속이 있으니, 잠깐 만나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소매를 떨치고 나는 듯이 가버렸다. 유 아무개가 창틈으로 엿보았다. 소년을 부르던 사람 또한 소년이었다. 두 사람은 옷과 갓이 같아서 구별이 어려웠다. 서로 손을 끌고 가는데 높은 언덕과 험한 벌판을 평지처럼 달려가는 것이었다.

유 아무개는 어떻게 놀랬는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갑자기 벽장문을 보니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았다. 벽장문을 열어 보니 뒤 시렁에 묵은 서책들이 있는데 모두 병법(兵法)에 대한 것이었다. 또 기러기 털이 두어 상자 있었고 벽 위에는 흑장의(黑長衣)가 걸려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유 아무개는 소년을 더욱 의심하고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얼마 후에 소년이 돌아왔다. 그런데 소년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내가 처음에 그대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는데, 어찌해서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남의 서책을 훔쳐보았습니까? 그대가 나를 속일 셈입니까?”라고 말을 하였다. 유 아무개는 속일 수 없음을 알고 곧 사과하였다. 그 다음에 “그대는 반드시 세상을 피하는 이인(異人)인 것 같소. 병서는 그대가 읽는다 할지라도 검은 옷과 기러기 털은 장차 무엇에 쓰려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소년은 “나는 이미 그대가 말이 헤픈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조금 시범을 보일 터이니 구경하십시오”라고 대답을 하였다. 소년은 기러기 털을 꺼내서 방안에 흐트러뜨린 다음, 검은 옷을 입고 몇 바퀴를 질주하며 돌았다. 하지만 기러기털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은 달리기를 이렇게 익히는 듯하였다.

유 아무개는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이어서 그가 다른 소년과 함께 갔던 것에 대해 물어 보았다. 소년은 “아까 왔던 소년의 원수가 경상도 고성(固城) 지방에 있는데 그 사람됨이 사나울 뿐더러 또 있는 곳을 몰랐다가 오늘밤에야 마침 집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까닭에 함께 가서 죽였다”고 말을 하였다. 유 아무개는 속으로 ‘보령에서 고성까지는 거의 1,000리가 되는데 잠깐 동안에 갔다 오다니 나는 새도 그만큼 빠를 수 없다’고 생각하고 탄복을 하였다.

유 아무개는 소년과 더불어 다음날 아침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작별을 했는데, 소년은 “그대가 만약 나에 관한 말을 세상에 퍼뜨린다면 나는 반드시 그대의 일족을 다 없애버릴 것이니, 그대는 말을 조심하시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유 아무개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길가에 풀을 맺어 그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었다. 그 후 한 달쯤 뒤에 다시 찾아갔으나 끝내 소년이 있던 곳을 찾지 못했다.

유 아무개는 소년에 관한 일을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평생토록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죽음에 임해서야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죽는데, 이인에 관한 일이 세상에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유 아무개가 죽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졌는데, 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이 글에 보이는 보령에 숨어사는 소년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홍대용도 담헌서에서 보령에 숨어사는 소년은 깊은 산 속에 숨어사는 이인으로 때를 만나지 못한 인물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홍대용의 서술태도로 보아서, 그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 홍대용도 주위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채록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보령 소년이 기러기털을 이용한 달리기 연습이 실제 무인들의 수련 방법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옛 무인들의 수련 방법을 살필 수 있는 조그만 실마리일 지도 모르겠다.
#허인욱 #무인이야기 #무예 #전통무예 #무술 #정대길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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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jrdmfTkdmtldh

    참으로 안따까운인간들이내 보여주면 잡아보고싶어하고 잡아보면 먹어야하고 먹고 둬져부려라 존중 존경은 모르는 궁굼증많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욕심많은 인간들아 ㅍ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넌 할줄아는게뭔대 ㅋㅋ

    2010-06-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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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이든 거짓이든 지금 현실은 변하지 않소.. 다만 그 이야기 속 소년처럼 수련하고 그 이야기속 소년처럼 될려고 노력한다면 좋은게 아니겠소??

    2010-06-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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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g

    그냥 이야기......... 이런식의 이야기라면 중국 일본이 훨씬더 많은데다 구체적이기까지 하죠....
    온통 뜬구름잡는 얘기네.....

    2010-06-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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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

    그냥 전설일뿐
    그런게 있을수 없지요

    2010-06-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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