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수박 이야기] 다 ~ 팔자 나름이여!

  


“다 ~ 팔자 나름이여!”...

팔자(八字)에 있어 그러려니 하고 살겠지만 한국이란 나라에서 전통(傳統)자 들어가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신세조질 각오정도는 해 두라고 권하고 싶다.

수박계승자 송창렬 선생

수(手)에는 손, 재주, 솜씨 등의 여러 뜻이 있다고 하나 이 중 ‘손’을 지칭함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박(搏)은 두드리다, 치다, 쥐다이니 아마도 수박은 손으로 두드리거나 치기도하고 쥐기도하는 그런 형태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두드리는 걸 어떻게 두드렸는지, 치는 걸 어떻게 쳤는지, 쥐는 걸 어떻게 쥐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문헌에 등장하는 수박의 동작을 그 용어만으로 유추 해 내기가 이렇게 쉽지만은 않다.

고려사의 정중부전(의종, 24년 8월조)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임금이 보현원으로 행차하려고 오문 앞에 이르러서...(중략)장하다. 이곳이 가히 군사를 훈련할 곳이다라 하고 오병수박희를 시켰다. 대장군 이소응(李紹膺)은 무인이지만 얼굴이 수척해 힘도 약해서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니 문신 한뢰(韓賴)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이소응의 뺨을 쳐서 섬돌 아래로 떨어뜨리자 임금이 군신과 더불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으니 임종식과 이복기도 이소응에게 욕설을 하였다.” 수년전에 모방송사에서 배우 이덕화(58)씨를 주연으로 방영한 고려 ‘무인시대(武人時代)’의 서막을 올리는 장면인 것이다. 무신(武臣)들의 실력행사로 왕은 폐위되고 “문신의 관(冠)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다 죽여 씨를 남기지 말라”는 명(命)에 의해 한 때 이 땅의 고려라는 곳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시체로 산을 쌓았다고 한다.


수박의 소뿔잡기동작, 북한 군무(軍舞)중에서

이 때의 박은 搏(두드릴 박)을 쓰고 있다(동지(同指); 충혜왕 3년(1342), 고려사 이의민전, 최충헌전, 태종실록 태종11년(1411) 등). 그리고 박(拍)을 쓴 예로는 ‘고려사 열전 권 제 39 변안열전’의 박희(拍戱), 태종실록 태종10년(1410) 1월의 수박희(手拍戱, 병조와 의흥부에서 수박희로 사람을 시험하여 세 사람을 이긴자로 방패군에 보충하였다), 세종실록 세종3년(1421) 5월의 수박지희(手拍之戱, ...열병을 하고나서, 인하여 수박희를 보고, 술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연주하여 삼군의 장수를 위로하는데...(중략)), 세종13년(1431) 3월의 수박(手拍, 경회루 북쪽에 나아가 종친들의 활 쏘는 것과 역사(力士)의 수박을 관(觀)하였다) 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가 고려사와 왕조실록 등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 중 한 가지는 수박(手搏)이나 수박(手拍), 수박희(手搏戱)와 수박희(手拍戱), 그리고 박희(拍戱) 등이 별 반 다르지 않았으며 매 한가지를 일컫는다. 즉, 박(搏)과 박(拍)의 혼용이고 병용인 것이다.


자기 뺨을 치는 무술?


일전에 한 체육전공 대학생이 한, 두시간정도 수련 후 나오지 않았는데 “세~ 상에 자기 뺨을 때리는 무술 있다”라고 했다한다. 수박의 기본 틀인 ‘제몸치기’(원래 용어는 아니다. 자기 손바닥으로 제 이마나 뺨, 어깨 등을 치며 단련하고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나중에 상대연습을 하게 되고 그 동작이 그대로 박격화된다)에 몸짓 등을 첨가하게 될 때 수박춤이란 무용이 된다. 또한 앉거나 서서 ‘이마치고’, ‘뺨 치고’ 등의 입장단을 곁들이거나 상대방과 손바닥을 마주치며하게 되면 어릴 때 한번쯤 해봤음직한 손뼉(수박, 수벽)치기가 된다.

이러한 수박-수박춤-수박치기의 연계성(轉移)에 이유해서 일 동작이 행위자의 개인적인 특성과 목적에 의해 보다 무술적 또는 무용이나 유희적으로 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목적성에 따른 일 동작의 활용인 것이다. 역(逆)으로 그에 대한 구분과 평가의 기준이되기도 한다. 수박(手搏)과 수박(手拍), 수벽치기 등은 동의어이나 무(武)와 희(戱)의 구별을 위해 편의상 구별했다. 하지만 실상, 손뼉을 치는 것과 상대의 어깨 등을 치는 것이 멀면 얼마나 멀고 다르면 또, 무에 다를까?

수박춤을 따로이 공연문화라 함은 그것에 일정한 스토리가 존재하고 특별한 양식으로서의 복장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여타 민간기예의 경우 대부분 평상시 입고 있던 옷이 곧, 무대복이었던 것에 비해 수박춤의 경우는 위의 요소들로 인해 전문연희의 흔적마저 보여 지는 것이다. 만주에서 난다는 울로초로 모자와 치마를 새끼꼬듯 해서 입고 나체로 춤을 추며 장단은 동살풀이(북청사자놀음전수조교 동선본선생 고증) 한가지이나 북한 평안도의 것은 ‘조선의 민속전통, 제7권’에서 알 수 있듯 ‘휘모리, 느린 타령장단 등’ 몇몇이 더 보인다.

자강도의 수박춤은 수시로 추어졌고 철산의 손벽춤은 남한의 여산군 수박희처럼 7월 백중에 세시풍속으로 전해진다. 김룡칠선생님(중국연변거주, 시인)의 증언으로는 1940년경 설 명절에 압록강 너머에서 연희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송준호 수박 이야기는 매달 둘째주, 넷째주 수요일에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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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련자

    자기몸을 때리는 단련법은 중국무술에도 있는데...전통얘기하기전에...뭐가 어떻게 다른지부터 얘기해야 하지 않나요??

    2010-11-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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