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우리 몸에 흐르는 기운(氣運)

  


(전편에 이어)

기운 돌리기, 운기(運氣)

운기(運氣)란 말 그대로 기(氣)의 움직임을 말한다. 대자연의 기(氣)는 물처럼 흘러 언제고 움직여 나아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 몸의 기 역시 정지한 채 막혀 있으면 병이 나는 법이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 건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운기가 잘 될까?

먼저 사람은 사람끼리 몸을 맞대고 있을 때 운기가 제일 잘 된다. 홀로 남은 독거노인들을 보라. 몸이 쉬이 쭈그러들고 걸음걸이가 느려진다. 혼자의 힘만으로 운기가 잘 되지 않는 탓이다. 반면에 짝이 있는 노부부들은 걸음도 훨씬 잘 걷고 몸도 독거노인에 비해 반듯하다. 함께 몸을 맞댈 상대가 있어 기운을 북돋아 주기에 노화작용도 더디게 일어난다. 그래서 예전 사대부에서는 늙은 노인에게 자식들이 효도한다며 젊은 애첩을 붙여주곤 했다. 늙어빠진 육체는 운기가 좋질 않아 몸이 식어 가니 추위를 많이 타고 병약해 지게 된다. 아무리 솜이불을 덮어도 체온이 오르지 않지만 젊은 첩과 몸을 맞대면 자연 기운이 돌아 체온이 오르고 건강해 지기 때문이다. 회춘(回春)이 되는 것이다.

흔히들 금슬 좋게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이 역시 오랜 시간 몸을 맞대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운기가 되어 세포와 조직까지 서로 닮아가는 현상이다. 그러니 만약 오래 함께한 부부가 닮지 않았다면 사이가 좋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부부가 아니라 원수라는 말이다.

인사로 나누는 기운

운기는 비단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 정성스럽게 인사를 나누어도 운기가 된다. 웃으며 인사를 하면 상대도 그 기운을 느껴 기쁜 마음으로 답례를 한다. 서로 간에 좋은 기운이 흘러 운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인사를 하거나 찡그리며 억지로 나눈 인사는 기운이 막혀 운기가 잘 되질 않는다. 내 기운도 나빠지고 상대의 기분도 나빠져 관계만 멀어질 뿐이다. 그러니 인사를 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해야 덕(德)이 되고 예(禮)가 되는 것이다.

수련생이 도장에 오면 인사를 제일 먼저 가르치는데 이때도 서로 간에 좋은 기운을 나눌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 공손한 인사를 가르쳐야 비로소 진정한 인성을 가르친다 할 수 있을 것이며 예시예종(禮始禮終)을 가르친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주고받는 기운

운기는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처음 본 사람에게 마구 짓는 개한테도 공손하게 인사를 해주면 금방 꼬리를 흔들며 온순해진다. 인사를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운을 느껴서 그렇다.
도가(道家)에서는 나무 하나를 정해 두고 매일 지나며 정성들여 인사하는 공부도 시킨다. 이렇게 3년을 하면 나무도 그 가지를 착 내려 화답을 한다고 한다. 지극한 정성을 수련하는 방법이다.

보은 속리산에는 수령 600살이 넘은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다. 1464년 신병으로 고통 받던 세조가 속리산을 찾아 치료를 할 때 이 나무 아래 이르러 타고 가던 연(輦)이 걸리려 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늘어졌던 나뭇가지를 하늘로 치켜 올려 연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이것을 신기하고 기특하게 여긴 세조가 그 나무에 정2품(현재의 장관급)의 벼슬을 내렸다.

그래서 그 후로 이 지방에 새로운 관리가 파견되면 먼저 이 나무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소나무의 품계가 지방 관리들의 품계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사실인지 왕의 치적(治績)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성이 지극하면 나무도 사람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로 나누는 기운

운기는 대화를 통해서도 쉽게 이루어진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말만 잘 통하면 금방 의기투합 되고 큰일도 쉽게 이루어 낸다. 내가 하는 말마다 상대가 쏙쏙 먹어주면 내 기운이 상대에게 잘 전달되니 무슨 일을 하던 힘이 모아지고 잘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라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답답하다 못해 미워지다가 마침내 서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서로 간에 기운이 꽉 막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지식인들이 TV에 나와서 토론을 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말싸움이 붙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똑똑한 지식인일지라도 참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가 되는 것은 상대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들이대니 서로 간에 기운이 막혀 그런 것이다. 이처럼 서로 간에 운기가 되지 않아 기운이 상충되면 아무리 높은 지식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래서는 어떤 힘도 모을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병약하거나 힘든 사람에겐 기분 좋은 대화, 신나는 대화를 자꾸 해주는 것이 천하의 명약이 된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기운이 트여 눈이 밝아지고 힘이 나니 쉽게 병이 낫기 때문이다. 즐거운 사람이 어찌 아플 수 있겠는가? 그러니 아프다고 주사와 약에만 의존하여 억지로 치료를 할 것이 아니라 재밌고 즐거운 사람, 깔깔거리며 웃음을 줄만한 건강한 사람을 찾아 온 몸으로 좋은 기운을 받는 것이 최선의 힐링(healing)이 된다. 좋은 대화를 통해 운기가 되고 나면 암도 낫고 어떤 불치병도 낫고 마는 대단한 힘을 갖게 된다.

시간에 따른 기운 변화

일 년의 기운은 음기가 가장 크고 양기가 가장 작아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 바뀐다. 동지가 지나면서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달도 보름이 될 때까지 점점 차다가 보름이 지나면 다시 기운다. 하루의 기운은 자시(子時: 밤11시부터 새벽1시까지)에 바뀐다. 우물물의 기운도 이 때 한 번 뒤집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일 년의 기운과 한 달의 기운 그리고 하루의 기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 하는데 이런 변화는 우리 몸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하루 중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시간은 아침 해 뜰 무렵과 저녁 해 질 무렵 즉, 출퇴근 시간이다. 지구를 지배하는 가장 큰 기운인 태양이 뜨고 지면서 거기에 사람들의 기운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감기에 잘 걸리는 것도 낮과 밤의 급격한 기운의 변화에 따라 우리 몸의 기운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도 아침에 맞는 비가 더 해롭다. 몸에서 운기가 왕성해 지기 전에 비를 맞아 그렇다. 겨울 아침 찬바람을 마시며 달리는 것은 몸에 좋질 않다. 잠에서 깨어난 몸이 아직 원활하게 운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슴 깊이 스며드는 찬 기운은 폐와 심장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겨울아침 운동은 무리한 뛰기보다 빠르게 걷는 것이 좋다.

죽음의 기운이 내리는 시간, 살(煞)

우리 몸의 기운의 변화는 하루에도 시간을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동양무술에서는 시각혈법(時刻穴法)이란 것을 발달시키기도 했다. 아침과 저녁 몸의 기운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시간에 특정부위를 타격하면 급소가 아닌 곳일지라도 치명상을 줄 수가 있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해지는 저녁나절에는 팔꿈치로 어깨 부위를 타격할 수 없다는 식이다.

실제로 나의 죽마고우 하나가 학창시절 별 것 아닌 일로 친구와 다투다가 남자답게 서로 한 대씩 주고받고 화해하자며 쳤다가 상대가 쓰러져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친구 역시 이 사건에 크게 충격을 받아 머리카락이 온통 하얗게 쇠어버렸고 이것저것 원인모를 병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왔다.

이처럼 죽자고 때린 것도 아닌데 한 대 맞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이 사회에선 간혹 있어왔다. 이런 경우 민간에선 하루 중 어떤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손에 살(煞: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독하고 모진 기운)이 내린다고 하는데 그 시간에 누구를 치면 큰 일이 난다고 한다. 게다가 하필 친 곳이 그 시각 상대 신체의 기운이 가장 취약해진 곳과 맞아 떨어진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장난삼아서라도 함부로 사람을 때리는 일은 삼가 해야 한다.

상(像)이 주는 기운

우리 몸에 흐르는 기운은 비단 몸을 강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얼굴이며 몸에서 풍겨나는 상(像)까지 바꾸어 주는 힘이 있다. 여기서 상이란 겉으로 투영되는 내면의 모습을 말한다. 귀인(貴人)에겐 귀인의 상이 있고, 건달에겐 건달의 상이 있다. 살면서 쌓아온 나의 기운이 겉모습을 통해 우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속이고 숨길 수 있어도 상은 감추기 어려운 법이다.

옛날이야기에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똑같이 생긴 왕자와 거지가 신분을 바꾸어 행세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지는 살면서 자기가 만들어 온 상이 있기에 아무리 잘 입혀 놓아도 곧 그 상에서 천박한 티가 드러나 신분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상(印象)

살면서 쌓아온 상은 얼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인상(印象)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인상이 좋은 사람은 대부분 심성도 곱고 인성도 잘 갖춘 반면 인상이 나쁜 사람은 심성도 거칠고 행동도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인상이 좋은 사람은 정신이 살아있고 성실하며 실력을 갖춘 사람일 경우가 많기에 인상 좋은 사람은 미소만 짓고 있어도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먼저 다가온다.

반면에 사기꾼에겐 사기꾼의 상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이라 그렇다. 욕심 없는 사람의 맑은 눈엔 곧 사기꾼의 상이 드러나니 다가 올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성형수술로 인상을 바꾸면 어떨까? 아무리 성형수술로 좋게 인상을 바꾸어도 내면의 생각과 기운이 바뀌지 않는 한 인상은 다시 돌아오고 만다. 인상이란 성형수술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 인상을 좋게 만들고 싶다면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자꾸 내야 한다. 그럴 때 내 몸에 익은 기운도 바뀌고 행동도 달라져 인상도 따라서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관상(觀相)보다는 인상(印象)이요 인상보다는 심상(心想)이라는 말도 있듯이 모든 기운의 시작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내면의 갖춤이 중요하다.

무인의 상(像)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한 선배 관장님이 계신다. 다른 주(州)로 출장을 가실 때마다 다른 무술 도장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정보를 수집할 요량으로 일부러 들러 보곤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척 내숭을 떨어도 곧 낌새를 채고 경계를 하더라고 했다. ‘이 사람은 상당한 실력을 가진 무인이구나!’ 하는 상이 비쳐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매번 작전에 실패하자 나중엔 당신 대신 부인을 들여보내 정보를 수집하셨다고 했다.

이렇듯 무인에겐 무인의 상이 비쳐나고 장사꾼에겐 장사꾼의 상이 비쳐나야 맞지 않을까?무예를 가르치는 사범이라면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굳건하고 믿음직한 상이 느껴져야 할 것이다. 잠깐의 대화 속에서도 ‘이 사람은 훌륭한 무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겠구나.’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좋은 기운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운기를 일으켜 낼 수 있다면 무인으로서 나름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다음 편에 계속 -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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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운기 #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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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범

    이사범님, 글 감사합니다.
    무인의 상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2015-07-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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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

    thank you sir

    2015-07-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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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져지 이사범

    좋은 정보,좋은 철학 감사합니다.

    2015-07-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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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strer y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7-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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