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황경선이 ‘황경선’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우리 후배들 더 좋은 환경서 더 좋은 대우 받았으면...”


'선수' 황경선의 마지막 꿈과 바람...



“단 한 번만 다시 메인무대서 시원하고 멋진 경기 뛰고 싶다”

18세 소녀가 한국 태권도 사상 최연소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코트에 서던 날, 모든 국민과 취재진의 관심이 아직은 앳된 황경선의 어깨에 놓여졌다.

그러나 첫 경기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패한 후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손에 잡았지만 기대와 관심이 썰물처럼 빠진 그 자리에 서러움이 밀물처럼 몰아쳤다.

4년 후, 이를 악물고 간절하게 다시 도전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황경선은 8강전서 크로아티아의 산드라 사리치와의 경기서 왼쪽 무릎을 부딪치며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미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던 무릎을 다시 다친 황경선은 덜렁거리는 다리를 끌고 준결승 연장전서 난적 프랑스의 글래디스 에팡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 결승 3회전 종료 40초를 남기고 그림같은 역전 왼발 뒷차기를 성공시키며 금메달을 손에 움켜잡았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시상대 맨 윗자리에 오른 황경선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시 4년 후, 2012년 8월 11일 오전 06시 33분(한국시간), 런던올림픽 태권도경기가 열리는엑셀 사우스 제1아레나서 황경선은 터키의 타타르 누르를 결승전서 맞아 완벽하게 제압하고 올림픽 2연패를 차지했다.

한국 태권도 사상 첫 올림픽 2연패, 세계 여자 태권도 선수 최초 3회 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 하계올림픽 여자 개인종목 사상 첫 2연패, 한국 올림픽 여자선수 사상 첫 3회 연속 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가 ‘황경선’의 이름 앞에 놓여졌다.

다시 3년이 지난 2015년 9월, 이제 황경선의 4연속 올림픽 출전, 4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은 자력으로 불가능해졌다.

‘태권도 女帝’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아픈 상처도 이제는...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황경선은 국제무대, 특히 2016 리우올림픽 자동출전권 획득을 위한 그랑프리시리즈서 쓰디쓴 좌절을 맛봤다.

“준비는 항상 열심히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는데...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이제 앞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합에 들어서면 적응이 잘 안된다. 자신감을 갖고 스텝을 밟고 싶은데 툭툭 들어오는 앞발에 점수를 내어주면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게임은 더 어려워지고 몸이 먼저 나간다. 경기에 진 것 보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이 더 속상하다. 그랑프리 대회 전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크지만, 막상 경기가 끝나고 나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다시는 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선다”고 털어놓는다.

런던올림픽 이후 성적 부진에 대한 주변의 시선과 언론의 차가운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주 예전에는 그런 기사나 말들이 너무 힘들어서 인종 언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인종 언니가 ‘네가 잘하면 사람들은 너에게 잘한다고 하고, 네가 잘 못하면 사람들은 너를 향해 잘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네가 또 다음에 잘하면 사람들은 다시 너를 향해 잘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다독여주었다. 그 때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괜찮다. 어떻게 보면 내 이름이 늘 거론되는 것은 나에 대한 기대감이나 존재감 때문이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제 서른을 넘긴 황경선이 부쩍 부드러워졌다. 한때 황경선에게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선수, ‘까칠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부드러워졌다는 말에 되돌아온 황경선의 답변에 마음 한 켠이 짠해졌다.

황경선은 “스스로 어렸을 때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항상 진심을 다해 말했고, 늘 솔직하려고 애썼지만 그 말들이 다시 나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날 방어하기위해 날카로워졌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난 것 같다고 느낀다. 17살 때 처음 월드컵대회에 출전해 져보기도 하고, 스포트라이트의 화려함과 그 반대의 어두움도 보았다. 결국 이겨내야 할 내 몫이었다.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난 것 같다”고 밝힌다.


‘언니’ 황경선이 후배들에게...

터키 삼순서 열린 그랑프리대회 마지막 날,
황경선이 경기장 밖에서 김소희의 어깨를 감싸며.

‘진심’을 다해서 말하는 황경선이 바라보는 후배들은 어떨까?

“후배들 보기가 안쓰럽다. 예전에는 선수들이 시합에만 신경 썼는데 지금은 후배들이 랭킹 점수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이겨내야겠지만... 민아가 이번 대회 전에 와서 ‘언니, 저 이번에 일등 못하면 올림픽 못나간대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데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랑프리 같은 이런 기회는 정말 좋은데 후배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 너무 안쓰럽다”고 말한다.

이어 “작은 소희도 지금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아니까 너무 안타깝다. 자신의 존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방황하는 소희가 너무 외롭고 힘들어하니까...난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내가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소희에게는 너를 위해 경기를 뛰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사실 민아한테는 지난번에 조금 냉정하게 말했다. 단 한번만이라도 폼을 바꿔서 시합을 뛰어보라고... 연습 때는 민아가 반대 폼으로도 잘하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한 폼만 고수한다. 민아가 가진 오른 발에 왼발이 되었든 주먹이 되었든 한 가지만 더 보태면 2020년 도쿄올림픽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데, 폼을 바꿔 패하더라도 민아가 정말 단 한번 만이라도 변화를 줘봤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리 여자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대우받고 좋은 환경에서 지냈으면 좋겠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라고 덧붙인다.

‘선수’ 황경선의 마지막 꿈과 바람...

황경선은 다음 달 맨체스터 그랑프리시리즈에는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을 믿어준 소속 팀 고양시청을 위해 다음 달 전국체전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손에 잡힐 듯 했던 올림픽 4회 연속 진출은 이제 멀어졌지만 한국 태권도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절대 가볍지 않은 이름 ‘황경선’.

그리고 '선수' 황경선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 하나와 남겨지고 싶은 기억 하나가 있다.

“사실 그동안 그랑프리시리즈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협회나 지도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너무 크다. 주변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딱 한 번만이라도 그랑프리 메인무대에 서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설사 지더라도 보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경기, 멋있는 경기를 그랑프리 메인무대서 딱 한 번만 뛰어보고 싶다. 그리고, 올림픽 2연패의 기록보다 10년 이상을 한 체급서 꿋꿋이 버틴 선수로 더 기억되고 싶다.”

[무카스-태권도신문 연합 = 양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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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어머니를 향한 효심에 감동 받았고 고운 마음씨가 선한 인상에서 항상 보여요. 여린 마음 이제는 다치는 일 없었으면 좋겠고 그동안의 부담감과 아픔을 내려놓고 최고로 행복하시길 바래요. 지금까지 무릎수술을 여러차례 받았는데도 다시 일어나서 여기까지 오신 그 오뚝이 같은 끈기와 노력이 놀라워요. 십여년간 정상을 지키고 서른살인 지금도 국가대표 1진을 할 수 있는...감동입니다. 황경선 선수가 세운 기록을 깰 선수는 앞으로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 올림픽 역사상 여자선수 최초로 3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된 기록이 제일 대단합니다. 태권도 선수가 이 기록을 세운 것이 정말 자랑스럽네요.

    2015-10-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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