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대역사서] 태권도 역사교육학 인식론 관점

  

태권도 대역사서 3 - 태권도의 민족 역사적 함의 정체성을 밝히다.


<태권도 정신의 역사적 재조명을 묻다.>

태권도의 정신은 「태권도 근본 의의나 목적」과 「태권도 수련 행위에 내포된 근원이요, 이상적인 인간 의식」의 개념이다. 즉 국기 태권도는 예로 시작하여 예로 끝을 맺는다.

예시예종을 중요시하는데 으뜸이다. 무예인의 추한 언행을 삼가 하여야 하고 태도를 명백히 하여야 한다. 즉 거짓은 말고 순간적인 기교를 부리지 말고 쓸데없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항상 누구에게나 예의를 표하도록 하는 것이 본질이다. 또한 충효정신과 상무정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여야 한다. 고도의 신체운동 기술과 함께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께 효도하는 정신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 태권도의 정신 이념 및 목적


현재까지 태권도 관련기관에서 제시하는 태권도 정신은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 등이다. 이러한 정신은 태권도지도자들에게 활용되어져 왔음을 여러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홍희(1983 : 15-17)의 저서 『국기 태권도교본』 국기원 편에도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 태권도 사관의 재조명을 묻다.


태권도를 바라보는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사관은 관련된 사실을 형성하는 방향에 차이가 있다. 역사에 대한 서술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태권도와 관련된 사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주의 태권도사와 근현대주의〔사실주의〕 태권도사이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김중헌, 곽택용, 임태희, 김주연(2010), 「전통무예시연회 : 전통무예 역사교육의 신체학문에 관한 정체성을 탐구하다. <태권도> 무도연구소. 참조 41-45 pp】

전통주의 태권도사는 ‘전통적인 기원설’이라는 것이다. 이는 ‘민족주의(民族主義) 사관’에 의해 태권도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민족주의 사관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민족주의 사관에 따른 태권도사의 서술은 1970년대 세계화를 진행시키는데 필요한 주장〔한국의 고유한 전통무예로서 태권도〕이 내포되어 있다. 강한 실천의식을 가지고 통설(通說)로서 확고한 입장을 고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태권도가 고대 삼국시대부터 발생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순수한 전통무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태권도의 전통성을 홍보하고자 대다수의 교본류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주의 사관은 민족적인 면이 강조되어 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면 근현대주의 태권도사는 ‘카라테 유입론’으로도 일컬어진다. 하지만 이는 ‘실증주의(實證主義) 사관’을 통해 태권도의 역사서술을 진행한 것이다. 실증주의 사관은 문헌을 통해 객관적이면서 인문과학적으로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다. 실증주의 사관에 따른 태권도사의 서술은 전통성에 흠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주장〔일본 카라테에 영향을 받은 태권도〕이다. 그러므로 제도권에서 인정하기에 곤란해질 수 있는 단점이 내포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한국에 도입된 카라테가 태권도 발생의 계기로 작용되었다는 사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인들의 민족감정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증주의 사관에 따른 태권도사의 서술은 한국 태권도에 필요한 실리적인 요구들을 묵과함으로써 나타난 현실과의 괴리를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전통주의 사관에 반대되는 개념인 근현대주의 등장을 통해서 볼 때, 동일한 사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의 시각에 따라 서로 상이(相異)한 결과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사관에 따른 역사가가 서술 당시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 시대적인 관심을 반영하여 서술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점의 실질적인 근거로 1960년대부터 나타나 있다. 전통주의 태권도사가 1970년대에 대대적인 태권도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애국심과 결부되어 대규모로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태권도의 학문화 과정〔태권도학과의 등장 등〕에서 촉발된 전통주의 태권도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이를 배경으로 근현대주의 사관이 등장하게 된 측면을 들 수 있다. 이에 옳고 그름의 분별을 떠나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통주의 태권도사와 근현대주의 태권도사의 내용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 태권도 전통주의 사관의 재조명을 묻다.


전통주의 태권도사의 내용은 국기원(2002)의 태권도 교본을 기반으로 편찬하였다. 이 내용의 핵심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에 존재했던 태권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국기원은 태권도사의 시대구분을 위해 한국사의 사분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에 고대(삼국시대)·중세(고려시대)·근세(조선시대, 대한제국시대, 일제시대)·현대(정부수립 이후)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주목된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기원(2002).『태권도교본』, 22-35 pp.】

삼국시대에 국방능력과 전투기능의 향상을 목표로 한 무예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고구려의 무사단인 ‘선배’는 조의선인, 백의선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武)를 중요시하여 무예의 근간은 택견이었다고 한다.

고구려 벽화인 무용총의 겨루기도에서 드러나 있다. 신라의 화랑도는 고구려의 ‘선배’를 모방한 것으로, 학문에 힘쓰며 수박‧격검‧기마‧덕견이‧깨금질‧씨름 등 각종 격투무예를 실시하였다.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에 있는 공격과 방어 자세에서, 위에는 바른 주먹(정권)이고 아래는 오늘날의 편 주먹과 같다. 동조금강역사상에는 발을 사용한 흔적이 나타남으로써 현재의 태권도와 흡사한 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석굴암의 금강역사상


삼국시대의 택견이 고려시대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국방능력과 전투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처럼 실전에서 응용이 가능한 집단대련이 발전되었다. 수박〔택견〕만 잘하면 벼슬을 얻거나 승진이 가능했다. 택견의 승부를 가리는 규칙이 존재했던 것을 통해서 고려시대부터 태권도의 경기화 및 스포츠화의 기반이 시작되었다.

수박희는 무인의 필수 무술로서 왕이 관람할 정도로 스포츠적인 성격을 지니며 일반인에게까지 보급된다. 고려 말에 화약의 등장으로 무예의 비중이 줄어들자 수박희는 민속경기로서의 기틀을 확립하게 된다.


≪무예도보통지 ≫『권법총도』 규장각도서


이와 같이 수박희와 같은 무술이 쇠퇴되고 있었던 조선에서 정조대왕은 무관을 양성하기 위해 『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하였다. ‘무예도보통지’ 제4권 권법(拳法)에 태권도의 품새와 같은 동작이 드러나 있다는 주목할 만하다.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국가적인 지원에 의해 택견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대쾌도’에 나타난 씨름과 택견의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경주시 용강동 석실고분 출토 토우


그러나 택견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민속경기와 유희의 형태로 실시되었다. 구한말에는 일본의 탄압으로 택견이 금지된다. 하지만 사범들에 의해서 비밀리에 전승되었다. 택견은 품, 굼실굼실을 제외한 14개의 기술 중에 발기술이 가장 많다.

광복과 함께 민족 문화와 전통에 대한 주체적인 의식이 형성되어 민속경기가 되살아났다. 과거에 택견을 수련하던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승만대통령의 생일에는 태권도(택견)의 시범을 통해 한국 택견과 카라테의 다른 점을 선보였을 정도이다.

특히 태권도장이 개설되면서 일반인에게 보급된다. 1954년에는 명칭을 태권도로 통일하고 1961년에 대한태권도협회를 대한태수도협회로 변경했다가 1965년에 대한태권도협회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중헌, 곽택용, 임태희, 김주연(2010), 「전통무예시연회 : 전통무예 역사교육의 신체학문에 관한 정체성을 탐구하다. <태권도> 무도연구소. 참조 41-45 pp】

태권도의 경기화를 통한 발전은 1962년 6월 20일에 대한체육회의 경기단체로 가입승인을 받고 있다. 1964년 9월 3일 제45회 전국체육대회에 정식경기종목이 된 것을 계기로 한다. 이후 1972년에는 태권도 중앙도장인 국기원을 개원하였으며 1973년 5월 28일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여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계기로 태권도는 전 세계 각계각층으로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의 가맹국은 192개국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무예이자 스포츠로서 민간외교와 국위선양에 이바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 태권도 근현대주의 사관의 재조명을 묻다.


현대주의〔사실주의〕 태권도사의 내용은 양진방(1986)의 연구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을 중심으로 일본의 유학생들에 의해 당수(唐手)의 유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입된 당수를 보급시키는 가운데 1960년대까지 한국의 전통무예이 태권도에 기술적으로 종합된 적은 없다. 【양진방(1986),「해방 이후 한국 태권도의 발전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56-58 pp.】

1950년대에 지도자들은 유입한 당수에 대해 한국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명칭의 개정, 기술의 변경, 기술용어의 변경, 역사의 정립 등에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변화 외에 실질적인 자기화로 당수를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점은 적극적으로 전통무예를 수용하거나 기술의 개발을 가져오지 못한 것에서 드러나 있다. 경기화를 통해 태권도는 손기술 중심에서 발기술 중심의 무예로, 형이나 단련을 위주로 하던 독습(獨習) 방식에서 겨루기 중심의 대인연습 방법으로 전환되었다. 【 김중헌, 곽택용, 임태희, 김주연(2010), 「전통무예시연회 : 전통무예 역사교육의 신체학문에 관한 정체성을 탐구하다. <태권도> 무도연구소. 참조 41-45 pp】

이런 변화에서 발차기 기술이 고도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태권도는 경기화를 통해 전통무술인 택견과 동질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유입된 당수를 발전적으로 극복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1960년대의 1차 단계에는 당수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수준에서 해외에 보급되어 Karate 또는 Korean Karate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2차 단계에서는 ‘경기태권(競技跆拳)‘을 중심으로 일본의 공수와 분명히 구별되면서 기술로도 우수한 한국 태권도를 세계에 인식시켰던 것이다.

〓 태권도 역사관의 문제제기를 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한류 문화 원류 태권도 국제교류 역사관, 국가관, 민족관, 사상관 등이다. 국기 무예 태권도의 역사관에 보이는 전통무예 실제의 극치와 신체사상의 이치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태권도 역사관은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이를 어떻게 하는지를 상세히 말해주고 있다. 태권도인들은 그 본질적인 면을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사진 : 앞차기는 땅의 기운을 받아 수직으로 높이 올려차는 것으로, 발차기의 힘은 앞축으로 하늘을 향해 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

그것이 바로 국기 무예 태권도발달 양상사관과 초중고 대학생 및 지도자 역사 교육역량강화이다. 이는 우리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나 지금 행하고 있는 역사관에 대한 모든 일체인 것이다.

사관이 지향해야할 것을, 이를 체계화하여 이론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관의 실질적인 역사학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국기 태권도는 현재 우리에게는 이러한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즉 그 시대에 대한 역사관의 이치와 태권도 실제의 극치에 관해 생각하고 이를 분석하여야 한다. 이것을 초석으로 삼아 미래의 태권도역사관을 비상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신체학문의 체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신체학문을 체계화하기에 앞서 우리의 신체학문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크나큰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여러 가지의 문제점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태권도 분야의 역사학이다. 이 분야는 민족사상관의 무예 실제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정신적 지주의 역사관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태권도 역사관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정확한 문헌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정립하고 있다. 국기원 전시자료도 미비한 수준이며 국기 태권도의 역사자료집이 없어 그 역사적 가치와 의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해요인으로는 국기 태권도 역사에 보이는 사진 및 유물 등의 국내외 1차 2차 역사자료를 수집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사료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 사료되는 바이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글. 송일훈 박사 | 한양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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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역사 #역사교육학 #송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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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016-06-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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