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원로, “태권도계의 질서가 깨지는 것 같다”

  

원로 태권도인 박철희 사범과의 만남


박철희 사범(좌)은 "주먹지르기는 이렇게"라며 번개 같은 동작을 보여줬다


“미국에서 국기원의 일(기자회견 사태)을 전해 듣고, 태권도의 질서가 깨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난 달 개인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박철희 사범(75)이 현 국기원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박철희 사범은 윤병인(6.25때 실종) 선생이 창설한 YMCA권법부(창무관, 강덕원의 모체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한다. 박 사범이 17살 때인 1950년에 6.25가 일어난다. 그는 그해 12월 육군 포병간부 후보생으로 군에 입대한다. 이후 1956년 육군사관학교 교관(육사초대 태권도교관)으로 제대했다. 군 복무 이후 박 사범은 경무대(청와대 옛 명칭)무도 사범을 역임하고, 홍정표씨가 만든 ‘무도원택견권법도장’을 이어 받아 강덕원의 초대 관장을 지낸다. 강덕원의 초창기 관원은 이금홍(전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 김용채(5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임복진(전 국회의원), 정화, 김정후, 이강희씨 등이 있다. 태권도 관 통합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었다. 이후 박철희 사범은 1971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미국에서 한국을, 태권도를 알리고 전파해 온 박철희 사범이 최근의 태권도계에 대한 걱정이 크다. “어떤 조직이든 질서라는 것이 있다. 특히 태권도는 선후배간의 예의가 강한 무술이자 조직이다. 이는 태권도인이라면 누구나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국기원 기자회견)이 생길 수 있는 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태권도를 배운 사람들이 이번 일을 보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

미국으로 떠난 후 태권도 제도권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박철희 사범이다. 그의 말에 정치적인 의중이 담겨 있을리 없다. 박철희 사범은 국기원이 바로 서야 태권도가 제대로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철희 사범은 그동안 “태권도에 관련한 경기나 사무를 처리하는 곳이 세계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 등의 행정단체의 몫이라면, 태권도 기술에 관한 모든 연구는 국기원의 몫이다. 태권도의 종주국이 대한민국이라면 태권도 기술의 종주는 국기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국기원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단지 단증을 발급하거나 지도자 교육을 시키는 단체의 역할만을 하고 있는 듯하다”는 충고해 왔다. 그런데 국기원 기자회견 사태까지 터졌으니 태권도를 정말 사랑하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태권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그리고 택견


한복을 입은 송덕기옹과 태권도복을 입은 김병수사범의 시연 모습(1958년, 경복궁)


박철희 사범은 청력이 안 좋아 보청기를 낀 것 외에는 정말 정정했다. 70이 넘었지만, 지금도 꾸준히 도복입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인상 좋은 노인이지만, 도복을 입으면 사람이 180도 달라진다. 도복에서 나는 바람소리는 웬만한 20대 태권도 수련생 못지않다. 비결을 물었다.

“미국에서 정말 좋은 운동을 하나 배웠다. 바로 미식축구다. 미국을 잘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미식축구를 배우는 거나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미식축구는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숨어 있는 운동이다. 이는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이 미식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다. 이러한 부분은 태권도인들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일까. 노령의 박철희 사범은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 태권도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개인 수련은 물론 후배들을 위해 무술 관련 서적을 집필하고 있다. 박철희 사범은 자신이 배운 권법을 중심으로 1956년에 ‘파사권법(破邪拳法)이라는 책을 집필했었다. 이후 2편과 3편격인 ‘활인권법(活人拳法)’과 ‘완인권법(完人拳法)’을 아직까지도 출간하지 못하고 있다. 박철희 사범은 “내가 게으름을 펴서 그래. 죽기 전에 두 책은 꼭 완성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철희 사범은 태권도외에 연구하는 무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택견이다. 박 사범은 송덕기 옹(택견 중요무형문화제 1호)과 특별한 관계다. 1958년, 태권도 시범을 처음 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저거 택견이구만”이라는 말이 계기가 돼, 1959년 열린 ‘전국무술개인선수권대회에 송덕기 옹이 시연자로 초대된다. 그것이 박철희 사범과 송덕기 옹의 첫 만남이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전시장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사진이 필요했다. 당시 태권도와 함께 택견이 채택됐다. 그래서 당시 이 일을 주관했던 ’문교부체육과‘는 경복궁 경희루에서 송덕기 옹을 모시고 택견동작을 촬영하게 된다. 당시 작업을 함께 했던 사람이 박철희 사범이다. 이 일을 계기로 박철희 사범은 송덕기 옹과 친해지게 된다.

“택견은 내가 집필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자는 의미의 활인권법과 인간을 완성하자는 뜻의 완인권법에 부합되는 무술이다. 택견은 역사가 있는 전통무술인 만큼 태권도와 함께 연구됐으면 서로 발전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송덕기 옹과의 사진 촬영 이후 박철희 사범은 택견을 보존하기 위해 대한택견무도연구원(가칭)을 설립하려 했으나, 법인문제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후 박철희 사범의 미국행으로 태권도와 택견은 연결고리 끊어지게 된다.

박철희 사범과의 대화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계속됐다. 곧 팔순의 바라보는 나이에도 태권도에 대한 열정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박철희 사범. 그가 한국을 찾았으면 태권도계에서 원로 사범으로서의 대우를 해줘야 정상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난 이후 태권도계의 정치적인 일을 하지 않았던 박 사범은 홀대 받는 느낌이었다. 그는 태권도협회나 국기원보다 결련택견협회를 찾아오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한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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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순천이..

    여기저기 바쁘네...

    2009-09-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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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사범

    건재하신 원로님 뵈니 감격스럽습니다. 2006년 4월, 홍상용관장님과 서울에서 뵈었던
    정순천입니다.
    미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09-02-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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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의적

    국회에서도 서로 주먹다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새삼스레 국기원사태가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하는가! 하지만 박철희사범님께서 이제 곧 80세가 되는데도 불고하고 아직도 도복을 입고 수련을 한다고 한다. 이것인 국내 관장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 미국의 미식축구의 끝없는 도전정신을 배워야한다고 하는데, 근본인 잘 못됐는데 인식이나 할 수 있겠는가?

    2009-02-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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