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의 태권도 다시 묻다⑥] 발차기를 배우며 무엇을 함께 배우는가
발행일자 : 2026-11-03 10:51:57
[임태희 국기원 연구소장 / taeheejm@naver.com]

자기조절에서 상대 배려, 일상 속 실천까지… 겨루기 교육이 품어야 할 또 하나의 가치

돌려차기를 익힌 수련자가 짝과 마주 선다. 혼자 찰 때는 정확했지만, 짝이 움직이자 거리가 달라진다. 그대로 차면 부딪힐 것 같아 발을 멈춘다. 지도자가 “왜 멈췄니?”라고 묻자 수련자는 “지금은 너무 가까워서요”라고 답한다. 이번에는 한 걸음 물러 디뎌 거리를 만든 뒤 다시 시도한다.
이때 이 수련자는 돌려차기만 연습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상대의 위치를 살핀 뒤, 공격을 멈추고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겨루기에는 이처럼 기술의 성공 여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배움이 있다. 그 경험을 어떻게 교육하고 도장 밖의 삶과 연결할 것인가.
앞선 글에서는 발차기를 ‘개별 차기 → 연결 차기 → 맞춰 겨루기’로 가르치자고 제안했다. 혼자 차기의 정확성과 균형을 익히고, 딛기와 함께 기술을 연결한 뒤, 짝과 공격·방어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품새에서 익힌 몸의 조절을 상대가 있는 상황으로 넓혀 가는 교육 경로이기도 하다. 이 경로에서 수련자는 발차기와 더불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같은 돌려차기를 연습해도 누구는 균형을 잡기 어렵고, 누구는 찬 발을 회수하기 어렵다. 지도자가 횟수를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디에서 중심을 잃었니?”, “다음에는 무엇을 바꿔 볼까?”라고 묻는다면 수련자는 자신의 어려움을 살피고 목표를 조정할 수 있다.
인내는 실패를 무조건 견디는 일이 아니라, 이유를 찾아 다시 시도하는 행동이 된다. 여기서 ‘나다움’은 남과 똑같이 차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몸의 조건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다.
짝과 함께하는 맞춰 겨루기에서는 기술뿐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법도 배운다. 공격자는 정해진 기술을 시작하기 전에 짝이 준비됐는지 확인한다. 방어자는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속도가 빠르다고 느끼면 잠시 멈춰 달라고 요청한다.
두 사람은 무엇이 불편했는지 이야기하고, 거리와 속도를 조정한 뒤 다시 연습한다. 이 과정에서 수련자는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인다. 예의는 인사나 구호를 넘어, 상대의 상태를 살피고 배려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너와 나다움’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함께 배우는 관계다.
이러한 배려가 도장 전체로 이어지면 함께 배우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숙련자가 초보자와 겨룰 때 빠르고 강하게 공격하기만 하면, 초보자는 당황해 피하기에 급급해진다. 반면 초보자의 수준에 맞춰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면, 초보자도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대응할 여유를 얻는다.
예를 들어, 숙련자가 앞발 돌려차기를 천천히 시도하면 초보자는 한 발 물러나 거리를 확보한 뒤 돌려차기로 반격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때 초보자는 배운 기술을 실제로 적용하고, 숙련자는 상대의 수준에 맞게 자신의 움직임과 힘을 조절하는 법을 익힌다. 이처럼 서로의 연습을 돕고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겨루기 수업의 ‘우리다움’이다.
국기원 태권도 교본은 자신을 이기는 극기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을 태권도 정신으로 설명하고, 인내·용기·예의·정의·봉사를 실천 덕목으로 제시한다. 모든 겨루기 동작에 덕목을 하나씩 붙일 필요는 없다. 자신을 조절하는 연습이 짝을 존중하는 행동으로, 짝과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배움을 돕는 행동으로 넓어질 때 이 가치는 수련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도장에서 배운 배려가 일상에서도 저절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짝을 배려하며 수련한 학생도 가정에서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따라서 수련 중 배운 것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필자가 참여한 태권도 라이프스킬 교육모형 연구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가르치는 과정, 수련자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더해, 배운 것을 일상에 적용하는 ‘전이’를 별도의 교육 과정으로 제안했다.
태권도 수련에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는 성찰 활동을 결합한 연구도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학생 25명을 대상으로 15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목표 설정과 시간 관리, 일부 일상 실천 지표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보고됐다.
참여자 수가 적어 모든 도장에서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수련 경험을 자신의 말로 정리하고,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교육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 연결은 짧은 대화에서 시작할 수 있다. 맞춰 겨루기 뒤 지도자가 “짝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했니?”라고 묻는다. 수련자가 “기다렸다”고 답하면 “집에서는 언제 다른 사람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라고 다시 묻는다. 수련자는 이번 주에 가족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기로 정한다. 다음 수업에서는 실제로 해 보았는지, 어려웠다면 언제였는지 이야기한다. 도장에서의 기다림을 가정의 대화에 적용해 보고, 그 경험을 다시 도장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이 ‘더 큰 우리’로 배움의 범위를 넓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품·단이 높아질수록 기술을 사용하는 능력뿐 아니라 상대를 고려하고 다른 수련자의 배움을 돕는 능력도 발전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균형과 힘을 조절하고 짝과의 약속을 지킨다. 경험이 쌓이면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기술을 바꾸거나 공격을 멈춘다.
고단자는 후배의 수준과 신체 조건에 맞게 연습 과제를 조정하고, 상대의 공격을 안전하게 피하거나 방어하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다. 특정 품·단에 덕목 하나를 배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같은 가치를 수련의 깊이에 따라 더 넓은 관계에서 실천해 보자는 교육적 제안이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겨루기 표준에 기술뿐 아니라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도 담아야 한다. 품·단별로 익힐 차기 기술과 함께 짝과 연습할 과제, 거리와 접촉 강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수련 후에는 “기술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무엇을 조절했는가?”, “나와 짝이 함께 배우는 데 도움이 된 행동은 무엇이었는가?”, “오늘 배운 배려와 자기조절을 일상에서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으로 수련 경험을 돌아보고 생활 속 실천으로 연결하도록 돕는다.
심사에서는 차기의 정확성, 적절한 거리 유지, 중지 신호에 대한 반응, 접촉 강도 조절처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 그러나 짧은 심사만으로 수련자의 인격이나 가정에서의 실천까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배려와 자기조절이 생활 속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는 도장에서 꾸준히 지도하며 시간을 두고 살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효과는 별도의 연구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겨루기에서 수련자는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핀다. 짝과 마주하며 상대의 신호를 읽고 힘을 조절한다. 함께 연습하며 서로의 배움에 책임을 지고, 그 경험을 가정과 학교, 직장의 관계에도 적용해 본다. 나다움에서 너와 나다움으로, 우리다움에서 더 큰 우리로 배움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겨루기 자체가 이러한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도자가 기술 연습과 대화, 성찰과 생활 속 실천을 연결한다면, 겨루기는 발차기를 넘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무카스미디어 = 임태희 국기원연구소장 ㅣtaeheej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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